아침에 날씨를 보니 언제 비오고 흐렸나 싶게 해가 쨍쨍한게 정말 열대의 아침이다. 오늘은 덥겠구나 걱정이 덜컥 들지만 그래도 비오는 것보다는 백배는 낫겠지 생각하며 일찍 숙소를 나섬.
오늘은 타이페이 근교의 예류 지질공원, 진과스, 지우펀을 도는 여정이라 8시도 되기 전에 숙소를 나서서 밀크티 한잔 마시고 지하철 역으로 향함. 타이페이 터미널로 가서 예류행 표를 사니 마침 곧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버스에 올라타서 1시간 반쯤 가니 예류 정류장. 지질 공원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만두 그리고 왕쿠르트 하나로 대충 끼니를 해결하고 공원으로 감.
예류 공원은 유네스코 자연 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곳인데 오랜 풍화 작용과 바닷물의 침식 작용으로 인해 해안가에 기기 묘묘한 바위들이 자연적으로 생겨서 유명한 곳이다. 어떤 블로그에서는 규모가 작아서 볼게 없다고 한 글도 본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꽤 괜찮았다. 터키의 카파도키아나 이집트의 바하리야 사막에 비하면 규모는 아주 소박하지만 그래도 푸른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바위들과 해안가가 보기 좋았다. 다만 여기도 관광객이 너무 많다. 아무리 봐도 수용가능한 규모를 넘는 관광객들인 것 같은데 대만은 정말 어디 가도 사람이 많다...ㅠㅠ
예류를 둘러보고 예전 식민시대 금광을 공원으로 만들었다는 진과스로 향함. 이번에는 가이드북도 하나 없이 구글맵과 인터넷에서 모은 자료들로만 여행 준비를 했는데 마침 내가 본 자료에는 여기서 지룽까지 1022번 버스를 타고 가서 갈아타라고 되어 있는데 그 버스가 없단다..헉.. 어떻게 하지 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계속 택시를 타라고 한다. 택시비 아까워서 어쩌지 하고 있는데 마침 다른 정류장에 가보니 지룽 가는 버스가 떡하니 있다. 어휴..잘 좀 알려주지 -_-;;
곧 도착한 버스를 타고 40분쯤 가니 진과스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는 지룽. 정류장에서 내리니 타이페이 못지 않은 대도시이다. 길도 넓직 넓직하고 건물들도 최신식 고층 건물. 날이 더워서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사들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진과스로 출발. 지우펀/진과스는 타이페이 근교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곳인데 산위에 있다 보니 좁은 2차선을 통과해야 해서 차들이 많이 막힌다. 역시 이곳도 사람들로 넘쳐나는 구만...가다 서다 지루하게 반복하다가 진과스에 도착. 진과스는 볼거리가 아주 많지는 않은데 광부 도시락을 파는 식당이 유명하고 산속에 만들어 놓은 길따라서 산책하기에 좋다. 중간 중간 박물관 이런게 있는데 그런건 뭐 별로 볼게 없고.. 광부 도시락 집에서 좀 기다렸다가 거기서 점심을 먹고서 산책을 시작함. 원래 여기 온 목표는 진과스 뒤편의 차후산이라는 곳을 올라가고 싶어셔였다. 대만 관련해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외국 블로그를 보게 되었는데 그 블로그에 올라온 차후산에서 바라본 전경이 매우 멋져서 무척 기대했던 곳. 그래서 차후산으로 가는 길을 찾아서 하이킹을 시작하려고 하니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안개가 자욱해진다. ㅠㅠ 앞이 안보이는 안개는 걷힐 생각을 안하고 이렇게 올라가봐야 볼게 없겠구나 싶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냥 내려옴..
이제 오늘 마지막으로 갈 곳은 센과 치히로의 모험의 모티브가 되었고 영화 비정성시의 무대가 되었었던 니우펀에 갈시간. 진과스에서 버스로 한정거장이어서 한정거장 지나서 버스에서 내리니....세상에....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지우펀 관광을 일찍 끝내고 타이페이나 지룽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적어도 1km도 넘게 서있는 것 같다. 아니 여기가 그렇게 대단한 관광지인가? 교토의 산넨자카 난넨자카 같은 역사가 담긴 관광지도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 사서 마시면서 지우펀의 골목길에 들어서니 ㅎㅎ 이건 뭐 골목길에 만원 지하철 수준으로 사람이 많아서 앞으로 가는 것도 힘들 지경 -_-;; 그래도 중간 중간 맛있어 보이는 간식들 사먹으면서 골목길 헤매고 다니는게 재미있기는 했다. 날씨가 좋으면 지우펀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아름다웠을것 같은데 날씨가 흐려서 그건 못보고 지우펀의 번잡스런 야경을 보고서는 오늘의 관광을 마무리함. 타이페이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가니 도착때보다는 줄이 짧아졌는데 그래도 아직 꽤 길다. 숙소로 어떻게 돌아가나 걱정하는데 마침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과 조인해서 6명이서 일인당 200$씩 내고 편하기 타이페이로 도착함. 내일은 아침 일찍 화롄 역으로 가야 해서 숙소에 오다가 발견한 바에 갈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하루를 정리함...
예류 가는 길에 본 귀여운 냥이
이집트 국립 박물관에 있는 네페르티티 두상을 쏙 빼닮은 바위. 옆에서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아주 길게 서 있었다.
어쩌면 진과스에서 제일 유명한 광부 도시락. 난 도시락 통은 필요 없어서 저런 구성으로 먹었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날씨부터 확인하니 비가 주륵주륵 내린다. ㅠㅠ 서울은 태풍이 지나가고 맑은 날씨라던데 그 좋은 가을 날씨를 뒤로하고 돈들여서 덥고 습하고 비까지 오는 곳에 와있구나 라고 생각하니 잠시 짜증이 ㅠㅠ 그래도 뭐 어쩌겠어. 비오는 대만의 풍경도 대만의 일부일텐데 그것도 보고 가면 되지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함
숙소에 비누도 없어서 세수도 안하고 머리도 까치집인 상태로 잠옷 바람에 슬리퍼 신고 편의점으로 감. 편의점에서 비누와 샴푸 그리고 블로그에서 자주 보던 밀크티 하나 사서 전날 걸었던 야시장을 걸어서 돌아오는데 그래도 비에 젖은 시장 골목과 아침부터 활기찬 대만 사람들 그리고 숙소앞 골목 분위기가 그럴싸 하다. 예전에 대만 영화에서 봤음직한 쓸쓸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오늘은 타이페이 곳곳을 둘러보기로 하고 숙소앞 노점 식당에서 주인 아저씨가 드시던 이름 모를 국수를 달라고 해서 따듯하게 속을 채우고 첫번째 목적지인 고궁 박물관으로 향함. 인터넷에서는 이지패스인가를 구매하라고 하던데 지하철역에 가니 일일 자유권이 있어서 버스+메트로 일일 자유 이용권을 180$ (대만달러 1 대만$ = 약 40원)에 구매해서 박물관을 찾아감. 대만의 지하철은 규모는 좀 작지만 너무 편리하고 깨끗하고 환승도 쉬운데다가 역에 안내도 잘 되어 있어서 이용하는데 조금의 불편함도 없었다. 길을 잘 못찾아 다녀서 여행 다니면 자주 물어보고 지도 보고 헤매고 다니는데 대만에서는 표지판만 잘 보고 다녀도 길을 헤매고 다닐 일이 거의 없음. 메트로 스린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조금 가니 목적지인 고궁박물관에 도착
장제스가 중국 공산당에 밀려 본토를 포기하고 대만으로 쫓겨나면서 중국의 국가적 보물들을 모조리 들고 와서 만든 박물관이 대만 고궁 박물관이라던데 과연 밖에서 척 봐도 그 규모와 위용이 대단하다.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어서 카메라와 가방을 입구에 맡겨두고 박물관에 들어가니 일단 수 많은 관광객에 놀라게 된다. 대만인인지 중국인인지 모를 중국어를 사용하는 관광객들에 한국 단체 관광객들까지 해서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단체 관광객들때문에 주요 전시물은 가까이서 보기도 힘들 정도. 이런 단체 관광객들을 요령껏 피해가면서 둘러본 박물관의 인상은 정말 놀라웠다.
세계 문명의 시조중의 하나이자 한때에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선진국이었던 중국의 역사가 남긴 문화가 얼마나 대단하고 방대하고 유래가 없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는데 명청시대의 유물을 주로해서 회화와 글씨, 도자기와 공예등 동양의 매력이 듬뿍 담긴 예술 작품을 보는게 참으로 좋았다. 지금이야 Made in China하면 조야한 싸구려 공산물의 대명사지만 어느 한때에는 중국에서 만든 도자기와 공예품들은 동서양의 귀족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을테지 ^^. 나이 드신 여자분들이 왜 자기들에 빠지시는지 이해가 될법한 아름다운 자기들도 마음에 들었고 무슨 뜻인지 알수는 없지만 글씨 자체로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한 서예,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듯한 정교한 공예와 아름다운 산수화들까지 모두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고궁 박물관을 나오니1시가 넘은 시간 점심은 딘타이펑에서 먹기로 하고 타이페이 역에서 택시를 타고 딘타이펑이 있는 융캉제로 이동. 가는 길에 장개석 추모공원을 들려볼까도 했으나 뭐 독재자를 기념하는 공원에 나까지 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 패스. 택시를 타고 그냥 지나치는데 지나치면서 본 모습은 뭔가 굉장히 많이 꾸며놓은 것 같기는 하더라.
블로그에서는 융캉제에 지하철이 없다고 해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메트로 역이 있다.-_-;;; 일일 자유권도 있었는데 어휴 택시비 아까워 (125$). 택시에서 내리니 바로 유명한 딘타이펑의 본점.2시가 넘었음에도 입구에 줄이 길다. 얼핏 보니 메뉴를 미리 받아서 주문을 미리 하길래 가서 메뉴를 달라고 했더니 유창한 한국어로 안내를 해주고 자리로 안내해서도 서빙하는 분이 한국말로 설명도 해주고 서빙도 해준다. ㅋ 한국 사람들 많이 오기는 하는 모양. 딘타이펑의 상징과도 같은 소롱포와 샤오마이 우육면까지 잔뜩 먹고서 계산을 하니 533$.. 좀 많이 나오긴 했네. 환전한 돈을 아끼려고 카드로 계산하려고 했더니 현금만 된다고 해서 좀 의아했음. 아니 이런 대형/고급 음식점에서 카드를 안받다니????
딘타이펑 뒤편의 융캉제 거리는 특이한 맛집이 많아서 유명하다던에 뭐 배가 너무 불러서 더 먹고 싶은 생각은 안났고 대신 일본의 시모기타자와가 떠오르는 조용한 골목길과 특색있는 가게들이 마음에 들었다. 유명한 빙수집이 있다던데 배물러서 패스하고 아사히 생맥주 간판이 있는 일본식 주점가서 맥주 한잔 하려고 했으나 맥주 한잔 마실수 있겠냐고 물어봤더니 영업 준비중인지 안된다고 해서 대신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 사서 근처 공원에서 시원하게 맥주 한잔 ㅎ
다음 목적지는 대만의 명동이라는 시먼당으로 이동. 과연 잔뜩 멋을 낸 대만 젊은이들과 체육복을 입은 - 대만에는 체육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다 - 대만 학생들이 많이 보이고 거리에는 패션 브랜드, 엔터테인먼트 가게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융캉제가 조용한 일본 골목길을 닮았다면 이곳은 작은 시부야 느낌이랄까. 시먼당 거리를 다니다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우연히 게임센터에 들어갔는데 온갖 리듬게임들이 다 있는데 게임 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람. 나는 화면 따라가는 것도 못하겠는데 손이 안보이게 게임하는 대만 학생들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특히 중딩인지 고딩인지 모를 남녀 학생이 댄스댄스 레볼루션이라는 체험형 댄스 게임 하는걸 뒤에서 보는게 정말 웃겼다. 뒤에 나말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구경하는데 다들 큭큭 거리며 지켜봤음 ㅎㅎ. 어째서인지 한국인에게 유명한 삼형제 망고빙수 집에서 망고빙수 하나 먹고 - 주인이 국적에 상관없이 가게에 오는 모든 손님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ㅋ - 메트로로 한정거장 거리에 있는 용산사를 방문
용산사는 시내에 있어서 많은 대만인들이 참배를 드리러 오는 곳이라던데 역시 타이페이 시민들과 그 시민들을 보러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개인적으로 종교도 없고 무신론자이지만 어느 종교든 조용히 절대자에게 기원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걸 참 좋아하는데 향냄새 자욱한 용산사에서 타이페이 시민들이 조용히 기원하고 참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참 평화롭고 좋았다. 나도 현지인들 따라 향하나 사서 향 피워두고 소원도 한번 빌어보고 ^^
하루만에 타이페이 이곳저곳 많이도 쏘다녔네. 마지막은 타이페이에서 제일 크다는 스린 야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고 저녁도 먹기로 함. 메트로를 타고 젠탄 역에서 내리면 바로 스린 야시장이라는데 출구를 잘못 내려서 한참을 걸어서 스린 야시장에 도착. 과연 어제 숙소 앞에서 본 야시장과는 규모가 다르다. 누가 살까 싶은 싸구려 옷가지나 잡동사니부터 어릴적 유원지에서나 봤음직한 조야한 오락기구들, 그리고 온갖 이름모를 음식을 팔던 노점을 코를 찌르는 취두부의 냄새를 헤치며 북적이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 다니는게 즐겁다.
현지인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노점에서 닭튀김과 크레페 비슷한걸 사먹었는데 아쉽게도 둘다 실패 ㅠㅠ 하고 숙소로 돌아옴. 우리나라는 왠만한 라면 집도 전부 프랜차이즈들인데 반해 대만은 시장이나 동네에 로컬 음식점들이 거의 대부분인 것 같아 좋았는데 그래서인지 맥주 문화는 좀 발달하지 않았다. 음식점에서도 맥주 시켜 먹기도 쉽지 않고, 망고 맛이 난다는 대만의 로컬 맥주는 맛없는 걸로 악명이 높다. 그래도 몇몇 바에서는 벨기에 맥주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볼까 하다가 너무 너무 많이 돌아다녀 피곤하고 해서 대신 시티슈퍼에서 런던프라이드와 Chimay 몇병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옴. 둘다 우리나라에선 찾아보기도 어려운데 한병에 5천원 남짓해서 감동 ㅠㅠ
이번에 대만으로 5박6일간 짧은 여행을 다녀옴. 여행 다녀오려고 한 계기가 좀 충동적이었는데 10월 9일이 휴일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휴일인걸 알고 어?그래? 그럼 바람 좀 쐬고 올까? 하고 장소를 찾아보던 차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일주일 미만의 짧은 기간동안 다녀오기 가장 만만한 곳이 어딜까 하다가 일본이나 태국은 몇번씩 다녀왔고 해서 그냥 만만한 대만으로 결정 ㅋ. 결정하고 보니 인기 있는 케이블 프로인 "꽃보다 할배"에 대만이 소개되서 대만 여행객이 150% 가량 증가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접함.
비행기표와 숙소는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두었으나 6일이면 뭐 별로 길지도 않고 해서 다른 준비는 그냥 인터넷에 올라온 대만 여행 블로그나 보고 하면서 다른 준비는 그냥 대충대충 ^^ 하다 보니 어느덧 출국날
비행기가 오후 5시 비행기여서 오전에 출근해서 건강검진도 받고, 급한 일 몇가지 처리하고 점심 먹고 짐 챙겨서 공항으로 감. 다음날이 휴일이어서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무척이나 한적하다. 여행자 보험도 들고 환전도 하고 면세점도 좀 둘러보다 비행기에 올라타 정확히 2시간 반을 비행하니 또 다른 세계인 타이페이 공항에 도착. 건물이나 거리들도 깨끗하고 사람들 외양도 너무 비슷해서 여기가 외국인가 하는 느낌이 잘 들지는 않는데 그래도 중국어 특유의 고음들이 주위에서 쉴새없이 이야기되는걸 듣고 있자니 그제서야 조금 외국에 와있다는게 실감이 난다.
버스를 타고 예약한 숙소로 도착하여 체크인. 그냥 호스텔닷컴에서 찾아보고 JVS Hostel이라는 곳의 가격이 싸길래 싱글룸으로 생각없이 예약했더니 시설이 썩 좋지는 않다. ㅠㅠ 뭐 호스텔이 다 거기서 거기지 생각하고 그냥 만족하기로 함. 그래도 호스텔 스탭은 참 친절하데. 어린 대만 여자분이셨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올 여름에 한국 다녀간 이야기도 나누는게 재미있었다. 우리나라 음식중에서 짜장면이 제일 맛있었다 그래서 웃겼음 ㅋ.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 주변을 둘러보기로 함. 마침 숙소 주변에 작은 야시장이 있어서 가보았는데 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운 수많은 음식 노점들과 옷가게 장신구 가게들 사이를 현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돌아다니는게 재미있었다. 대만의 대표적인 음식중 하나인 취두부의 향기(?)에 취해 돌아다니다 출출해서 아무곳에나 들어가 이름모를 대만 음식 -나중에 알고 보니 굴전-도 하나 먹고, 너무나 맛있었던 망고 빙수까지 하나 사먹고 나니 어느덧 꽤 늦은 시간. 오늘은 그냥 맛보기이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돌아다니자 마음먹고 편의점에서 캔맥주 몇개 사서 숙소로 돌아옴
르네상스와 근대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바꾼 변화의 시작을 단지 어떤 인물과 사건으로 특정 지을 수 없겠지만 이 책에서는 다양한 원인과 사건 중에서 교황청 소속의 필사가 포조 브라촐리니와 그가 독일의 외딴 수도원에서 발견한 고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라는 책을 가지고 중세 기독교 문화의 굳건한 성채에 어떻게 억압되고 잊혀져가던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이 스며들 수 있었는지 밝혀 나가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포조 브라촐리니는 평범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빼어난 필사 기술과 인문학 - 그 당시 인문학은 그리스. 로마의 잊혀진 책들을 발굴하여 복원하는 것- 과 법학적 지식으로 교황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을 비서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와 기독교 국가간의 분쟁으로 인해 교황이 폐위 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때 그는 그 자신이 사랑했던 그리스, 로마의 잊혀진 책을 찾으러 전쟁과 천재지변을 피한 오래된 고전들이 남아 있는 외딴 수도원들로 여정을 떠나고 거기서 문제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쟁과 천재지변 그리고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한 파손의 위험을 이겨내고 마침내 다시 한번 빛을 보게된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는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시집으로 엮은 책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그 이전 철학자였던 데미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이어받아 사물의 본성은 쪼갤 수 없는 원자 - atom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삶의 목적을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로 보았으며 죽음이란 고통 없는 존재의 끝으로 보고 내세에 대한 관념을 거부한 학파로 그들의 주장을 보면 마치 현대 과학의 세계관을 보는 것 같아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에피쿠로스 철학중 이러한 무신론적 세계관은 고대 이래로 많은 종교와 철학에 위협이 되었으며 정치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에피쿠로스 학파의 성격과 어우러져 당대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고 특히나 기독교가 지배적이던 중세 시대에는 이단의 사상으로 처벌 받기까지 했다. 이러한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을 폄하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쾌락주의 = 비도덕이라는 등식인데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쾌락은 무분별한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하는 것으로 죽음의 공포와 신의 응보로부터 자유로운 만족감과 고요함의 상태이나 이를 마치 디오니소스적인 비이성적 쾌락으로 폄하했던 것이다. 이러한 쾌락에 대한 접근을 미연에 차단함으로써 중세 기독교 문화는 천년간이나 고통의 추구를 선이라고 생각하여 금욕뿐 아니라 자발적 자학을 통한 육체적 고통과 같은 억압과 공포의 문화를 유지할 수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포조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정수가 담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찾아내어 세상에 전파를 했고(그렇다고 포조는 이 일로 핍박을 받지는 않았다. 다시 교황청에 복귀해서 성공적인 생활을 수행했고 말년에는 피렌체의 총독으로 부임했다고 한다.)이 책은 여러번의 필사를 통해 복제되면서 교회의 견제를 받기도 했으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도입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그렇다고 해서 현대시대의 베스트셀러처럼 한번에 밀리언 셀러가 되어 갑작스러운 시대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겠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퍼져나가 토마스 모어, 루터에 앞서 종교 개혁을 이야기 하다 이단으로 처형받은 조르다노 브루노,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예술가들 몽테뉴와 마키아벨리, 갈릴레이등 근대를 열어간 혁신가들에게까지 전해졌고 이러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느리지만 거대한 변화는 끝내 근대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본인이 에피큐리언이라고 이야기했던 미국의 대통령 제퍼슨에게까지 이어지게 된다.
미지의 책을 찾아 수도원을 돌아다니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떠오르는 플롯과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고, 단순한 작가의 상상이 아니라 수많은 사료를 통해 고증이 된 책의 역사, 도서관의 역사등과 같은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생생하게 그려진 그당시 필사가들의 삶의 모습, 중세시대 교황청과 피렌체의 생활상등을 접하면서 즐거운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게 해준 책.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표지 디자인이 책의 내용과 가치에 비해 좀 허접함 ㅠㅠ
인간이라는 종족은 지구상의 다른 종들과 비교해서 고도의 경쟁과 협업을 발전시켜왔는데 이러한 인간의 행동적 특징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인간의 특징을 오랜 진화과정을 거친 적응의 산물이라고 설명하는 다른 진화 생물학/심리학 책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다른 책들이 인간의 심리, 그 중에서도 오랜 진화의 환경과 현재의 환경의 불일치로 생겨나는 비합리성과 편향에 촛점을 맞추어 설명을 하는데 비해,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들을 소재로 하여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의 사례와 경제학의 비용편익 분석과 게임이론, 수요공급 법칙등을 활용하여 인간(과 동물의) 행동의 유래와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주요 행동들은 현대 인류도 매일 매일 접하는 지배와 복종 (꼭 정치적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모임에서도 포착되는), 족벌, 서열관계와 그 서열을 유지하고 무너트리기 위한 정치, 협력과 배신, 그리고 사랑과 결혼등인데 책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저자가 그동안 쌓여왔던 한을 풀려고 작정이라도 했는지 저자가 겪은 이탈리아의 군대 부패와 대학사회의 부패, 미국 학교에서 벌어지는 정치, 논문 심사를 둘러싼 갈등등을 다른 영장류의 사례와 비교하는 것도 참 재미있었음.
특히 어째서 인간은 정서와 사랑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유일하게 발달했는지 하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의 이유는 아이의 생존 확률이 극대화되는 4살이 될때까지 부모의 육아를 유지하기 위해 아동시기의 모성 애착이 성인이 되어 발현되었다는 주장으로 그야말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사랑의 낭만성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예술가들이 들으면 어이없어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해서 오늘도 연애와 사랑에 대해 (별로 도움 안되는) 지식만 늘어가는구나 ㅎㅎ
소비자로부터 컬트적인 사랑을 받는 위대한 기업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위대한 리더들은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쉽게 움직일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이 책의 저자 사이몬 사이넥은 그들과 그 기업이 Why?라는데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과 기업은 What - 무슨 일을 하는가? - 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알고, 그중에 몇몇은 How - 어떻게 해야하는지 - 도 알고 있지만, Why? - 왜 이일을 하는가 ? - 를 알고 있는 기업과 지도자는 드물고 그걸 잘 아는 기업과 리더들만이 위대한 기업과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 예로 애플을 들고 있는데 보통 다른 PC제조업체가 "우리는 PC를 만듭니다 (What) -> 빠르고 값싸게 만들죠 (How)". 이렇게 what에서부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비해 애플은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Why) -> 그래서 사용자 경험에 포커스를 맞추고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최고 수준으로 개발하죠.(How) -> 자 여기 맥과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등입니다 (What)" 라고 반대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사람들이 거기에 열광한다는 이야기.
저자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위해 Why?라는 부분은 비언어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변연계와 관계가 있고 이부분은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제어하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근본적인 선호- 마치 누구를 왜 좋아하느냐?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를 만들어 낸다고도 이야기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전에 TED의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서 여러번 반복해 보면서 마음에 담아두려고 했었는데 책으로 다시 읽으니 한번 더 정리가 되어 좋았음. 책 읽기 싫으면 책의 내용이 완벽하게 요약된 아래 동영상은 꼭 한번씩들 보시길~
버트넌드 러셀의 에세이집. 러셀이 다른 지면을 통해서도 많이 이야기한 철학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 기독교와 비합리성, 전체 주의에 대한 경고, 세계 평화등에 대한 주장을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제목 인기없는 에세이는 이 에세이집의 전작이 쉽게 썼다고 했으면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비판에 그렇다면 이번 에세이집은 인기없는 에세이다 라고 해서 지었다고 ㅎㅎ
50여년전의 에세이임에도 오래된 느낌보다 얼마전에 작성한 것처럼 현대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남아 있어 읽어볼만 하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관계에서는 무조건 상대에게 양보하는 이타적 관계에서부터 상호 윈윈 그리고 한쪽이 모든걸 가져가는 승자독식까지 다양한 협력과 경쟁의 관계들이 발생한다. 이런 관계를 두고 홉스와 같은 정치 철학자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인간 역사에서는 두개의 극단 사이에서 균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균형은 단순히 인간의 선의 때문이 아니라 협력이 적응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진화 생물학자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럼 이러한 협력은 근대 이후 어떻게 변화되어 왔을까? 저자는 유럽문화의 특수한 사건 즉 초기 종교개혁과 길드의 협동적 노동방식에서 협동적 문화가 촉발되었으며 이러한 문화는 직업적 외교관들이나 일상적 행위에 예절이 등장함으로써 가속화 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협동적 문화가 현대사회에 와서 위기에 처했다는게 저자의 진단이다. 현대사회에서 협력이 무뎌진 이유로 다음 세가지를 꼽고 있다. 첫번째는 사회적 관계를 체득하는 아동 시기부터 아이들간의 상호 관계가 아닌 소비의존도에서 야기되는 불평등이 심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소셜네트웍은 우정을 상업화 하는데 아이들의 삶의 관계는 이제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연극적으로 소비되면서 아이들은 기존의 계급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두번째는 일터에서의 변화인데 2차세계대전 이후만 해도 미국의 공장에서 찾아볼 수 있던 획득된 권위와 상호 신뢰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의 협력은 금융이 대표적인 산업 모델로 부상함에 따라 찾아보기 어려워 졌는데, 이제 회사는 하나의 포트폴리오로써 단기적으로 팔리거나 추가하거나 개조할 수 있는 구성 부분의 집합체로 변모한 것이고 그 곳에서의 노동은 평생에 걸친 커리어가 아니라 단기적인 근무기간의 무대로 바뀌게 되었다. 거기에 각 부서간 단절을 의미하는 사일로 효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고 있으며, 기업이 복잡해지고 테크놀러지가 발전함으로써 최고 경영자가 테크니컬한 노동자들을 이해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회적 불안을 숨기기 위한 비 협동적 자아의 출현때문인데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타인과 상대하는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나르시즘 적인 자기 자신을 위한 공연을 하면서 자기만족적인 무관심 개인주의가 득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협력의 문화를 되살릴 것인가? 그중 하나는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신체적 협동의 문화를 가져오자는 것인데 동작은 관계를 활성화 시키고 숙련된 일꾼이 저항 (목수를 예로 들면 나무의 옹이)을 최소화 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더 많이 연결되고 참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부분은 잘 이해가 안됬다. 이런 신체적인 활동과 공유가 협력을 증진시킨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신체 활동의 특징이 협력을 고양시킨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은유로써 사용한 것인지 잘 이해는 안감 또 하나는 협력의 드라마를 만들자는 것인데 사람들과 만나는데에서 일상의 외교를 통해 대화적 대화를 실용화 하자는 것이다. 여기서는 카운셀링, 참여, 회의, 전문 외교관의 외교적 기술과 같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첼리스트 출신의 박식한 사회학자로 글쓰기의 방식이 음악가, 공방등의 가까운 현실에서 중세의 철학자로 넘어가서 다시 현대의 정치 이론으로 넘어오는 방식과 같이 종횡으로 주제가 이동하는데 이게 재미있기도 한데 개념이 너무 방대해서 나로써는 중간중간 읽기 어렵고 개념을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ㅠㅠ
현재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SF 작가라는 칭송을 얻고 있는 테드창의 2010년 신작. 테크니컬 라이팅이라는 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20년 동안 고작 중단편 12편만 발표했지만 발표하는 소설마다 유명한 SF상은 다 휩쓸고 다니는 괴물같은 작가(이 작품도 2011년 휴고상 중편부분 상을 수상함). 첫번째 중단편 모음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2002년에 접했는데 그때 SF 소설의 매력에 빠져서 그 이후로 유명한 SF소설을 종종 찾아 읽고 했는데 이번에 11년만에 새로운 작품이 번역 출간된다고 해서 무려 예약 구매를 통해 예약 후 아껴서 읽음^^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싱귤러리티 (이 개념을 주장한 대표적인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현재 구글의 인공지능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무서운 구글…) 이후에 순수한 바이너리로 이루어진 인공지능을 위한 윤리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문제는 블레이드런너, 공각기동대, AI등 많은 SF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어진 주제일 것이다. 이책도 일종의 AI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소설인데 싱귤러리티 이후의 윤리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지적능력을 처음으로 가지게된 AI는 어떻게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하겠다. (여담으로 테드창은 싱귤러리티라는 개념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가상의 애완동물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그 가상의 애완동물을 훈련시키는 전직 사육사와 그들이 키우는 가상의 애완동물들을 둘러싼 커뮤니티인데 새로운 생명체로써의 AI를 코딩으로 만들고 교육시키고 판매하고 관계를 맺어나가다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가 부도가 나고 설상가상으로 그들의 가상의 라이프 스페이스였던 OS플랫폼이 망해서 다른 플랫폼으로 이식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는데 이 과정에서 던지는 관계와 기억 책임과 양육 사랑과 자기 결정등의 다양한 윤리적 철학적 질문들이 가볍지 않다.
최근에는 소설도 잘 안읽다 보니 SF를 오랜만에 접했는데 아서 클락, 아이작 아시모프등이 개척한 하드 SF가 예전에는 물리학, 우주공학, 기계 공학을 기초로 했다면 앞으로의 하드 SF는 테드창의 이 소설처럼 소프트웨어의 알고리즘과 구조에 입각한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술이 발전하면 편재하게 된다고 한다. 최신 기술로 각광 받던 기술이 일상화 되면서 기술 자체가 완벽히 배경 기술이 되어 사용자는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상황을 말할텐데 컴퓨터와 많은 인터넷 기술도 그 직전 단계에 와있지 않을까? 고가의 귀한 자원이었던 컴퓨터는 이제 집과 직장 그리고 손에 하나씩 쥐어져 있고 곧 사람들 신체에 보이지 않게 부착될 것이고, 웹과 소프트웨어 기술은 많은 서비스와 소프트웨어들이 이미 이 단계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신체 자체가 네트웍에 연결되는 노드가 될 멀지 않은 시기에는 컴퓨팅 자체가 편재화 되겠지. 어쨌건 이미 우리들도 매일 매일 인터넷에 접속해서 검색을 하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신뢰해서 다운 받으며 때로 신용카드와 같은 절대 유출되어서는 안되는 번호를 거리낌 없이 서버로 전송하면서도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한번 더 생각해보면 전 지구상에 흩어진 수십억개의 데이터에서 어떻게 사람마다 필요한 정보를 꼭 찾아서 검색 결과로 알려주고, 수천만명의 고객이 동일한 서버에서 온라인 거래를 하고, 공개된 인터넷 회선을 통해 어떻게 신용카드 정보를 보내며, 데이터들은 어떻게 최적화 되어 오류 없이 서버간을 이동할 수 있는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을 가능하게 한 것은 20세기 컴퓨터 과학이 태동된 이후 수많은 천재들이 때로는 그들의 젊음을 모두 바쳐 연구한 덕분인데 이 책에서는 그중에 검색 (인덱싱과 페이지랭크), 공개키 암호화, 오류정정코드, 데이터 압축, 데이터베이스등 9가지의 알고리즘을 선택하여 그 원리와 개발 과정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을 해주는데 매일 같이 사용하는 서비스의 이면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구나 알아가는 과정이 지적으로 매우 즐거웠고 잘 만들어진 알고리즘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알고리즘을 소개하는 이 책의 마무리는 역설적으로 튜링의 유명한 논문인 "정지 문제의 결정 불가능성"에 대한 증명으로 끝내는데 이부분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 사족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정을 생각해보면 공개키 암호와와 같은 아름다운 알고리즘이 아무 문제없이 전 세계 웹에서 잘 사용되는데 우리나라는 뭐한다고 액티브엑스니 공인인증서니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 다시 한번 이해하기 어려웠고 오가닉 검색은 없이 광고로만 검색결과를 채우는 네이버가 우리나라 검색분야를 독점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