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가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어서 알라딘에서 신간으로 소개됐길래 작가가 본인의 전공 분야에서는 얼마나 재미있게 책을 썼을까 호기심에 구매한 책. 구매하면서 아니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 같은 대작을 쓴지가 얼마 됐다고 또 책을 썼나 대단하다 싶었는데 사고나서 보니 두 책보다 먼저 2007년에 쓴 책으로 ;; 이 책으로 글 잘쓰는 작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제길 책 소개 좀 잘 읽어보고 살걸..

근현대의 전쟁에서 특수 작전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적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시 되는데 엘리트 군인으로 이루어진 특수부대가 은밀하게 적진에 침투해서 기반시설이나 무기, 상징등을 파괴하거나 주요 인물을 암살, 납치하는 특수 작전은 전쟁 영웅의 면모가 부각되기 쉽다는 특성상 영화와 게임등의 대중 매체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주제중의 하나 일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쟁의 포화가 그치지 않았던 유럽의 중세시대에는 어땠을까? 기사도 정신이 칭송 받던 시대 특수 작전은 기사답지 못하다고 고려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현대전 처럼 납치와 암살 기반시설의 파괴등이 빈번했을까? 이 책은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1100년에서 1550년 사이의 유럽 전쟁사중 특수작전이라고 할만한 사례를 뽑아 이야기하고 있다.

안티오키아 - 십자군 원정의 초창기에 시리아로 향하는 관문인 난공불락의 성 안티오키아 공략 작전. 공성전이 길어져 군인들은 죽거나 도주하고 설상가상으로 안티오키아를 돕기 위한 지원군이 다가오는 패배의 문턱에서 적과의 내통을 통해 요충지를 점령하고 그 기세로 성을 함락. 결국 이후 십자군 원정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 시발점이 됨

하르푸트 - 프랑크족 왕과 귀족들을 투르크족 왕조의 아르투크 부족의 태수가 납치하여 요새 하르푸트에 감금하고 그 여세를 몰아 정복 전쟁에 나섬. 용감한 아르메니안 인들이 상인, 고행자 등으로 위장하여 요새에 침투하여 성을 점령하는데 까지는 성공하였으나 소수의 병력으로 수성이 힘들어 한명만 포위망을 탈출하여 지원군을 모집하러 감. 그러나 그 사이 정복 전쟁에 나섰던 군대가 회군하여 프랑크족 왕족은 다시 포로가 되어 버림. 그러나 이 결과 투르크족의 정복 전쟁에 제동이 걸리고 탈출한 귀족을 중심으로 프랑크족의 사기가 진작되기 시작함

티레 - 중세 시대 가장 유명하고 현재에도 어원에 남아 있는 니자리파의 - Assassin의 어원이 된 하시신파로도 불린- 암살 작전중 예루살렘 왕국의 새로운 왕위 계승자 콘라트의 암살 사건을 다룸. 흔히 픽션에서 다루어진 니자리파-하시신파의 암살자들에 대한 설화들-마약과 쾌락에 중독시킨다는-과 달리 전문적이고 정치적인 암살 집단으로써의 면모를 그림. 니자리파는 콘라트 암살 이후로 유럽 전역에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고 정치적 입지가 강화됨

칼레 -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유럽 대륙 침략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프랑스 북부의 칼레를 점령하고,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용맹한 전사로 명성이 높던 샤르니가 칼레를 수복하고자 나섬. 완강한 성의 위용덕에 직접 공격이 어렵자 샤르니는 용병을 매수하여 성에 침입하려고 하나 반역 사실을 미리 알게된 에드워드 3세는 배신한 용병을 이중첩자로 활용하여 침공을 막아내고 프랑스 군을 모두 포로로 잡음. 사르니는 오랜 포로 생활 이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훗날 다시 칼레성을 지키던 용병을 사로잡아 복수를 하고 본인은 다른 전투에서 패배하여 사망. 칼레는 잉글랜드의 중요한 거점으로 200여년이나 영국 지배에 있다 1500년에 프랑스가 탈환.

부르고뉴 왕가 - 중세시대의 제국은 결혼과 상속을 통해 이합집산 하는 경우가 많았음. 장 2세 프랑스왕에서 프랑스 왕가와 갈라진 필리프가는 프랑스 왕가가 영국-프랑스 백년전쟁에 국력을 쏟는 틈을 타 저지대 지역이라 불린 프랑스 북부 베네룩스 3국 지방에 후손이 없었던 친척들과 이웃들을 회유하고 협박하여 상속자가 되는 방법으로 하나 둘씩 필리프가의 영지로 흡수하여 방대한 브루고뉴 공작가를 세움. 그러나 백년전쟁을 마무리하고 중앙집권적 국가를 세우려는 루이 11세가 브루고뉴 지방에 눈독을 들이게 되고 이에 브루고뉴와 루이 11세의 프랑스 북부를 둘러싼 암투에서 벌어 졌던 수많은 납치와 암살의 성공과 실패담. 최종적으로는 브루고뉴 공작가는 프랑스 왕에게 패배하게 됨. 후손이 없는 친족과 이웃으로부터 상속을 받아 건설한 필리프가의 최후손은 아이러니하게도 마리라는 이름의 외동딸이었고 그녀는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원이 됨.

오리올의 방앗간 - 유럽의 패권은 영국이 대륙에서 물러나고 프랑스가 브루고뉴 지방을 평정하면서 프랑스가 강해졌으나 이어 합스부르크 왕조가 꽃을 피움. 스페인, 저지대 지방,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남부에서 프랑스를 둘러싼 합스부르크 왕조의 카를 5세는 오스만 왕조를 이용해 자신들을 견제하던 프랑스를 침략. 병력이 부족한 프랑스군은 프로방스 지역에서 물러나며 농가와 우물등을 불태워 프로방스 지역으로 진군한 카를 5세의 군대가 병참에 문제를 겪도록 만드는 전략을 세움.
프랑스의 계획 대로 내륙 깊숙히 들어온 카를 5세는 식량 부족에 시달렸으나 유일하게 남아 있던 오리올 방앗간에서 나오는 식량으로 겨우 버틸 수 있었음. 이를 알게된 프랑스는 방앗간 폭파하려고 했으나 너무 위험한 작전이라 아무도 지원하는 지휘관이 없었음. 이때 군에서 성공을 위해 무공을 세우고 싶어하던 무명의 하급 장교가 지원하여 120명의 소규모 병력만 가지고 기습하여 방앗간을 파괴하는데 성공. 결과적으로 카를 5세의 군대는 보급에 더 애를 먹었고 결국 원하던 바를 얻지 못하고 다시 이탈리아로 퇴각.
이 하급 장교는 상급 장교들이 공을 독차지해서 왕으로부터 큰 보상은 받지 못했으나 이후 계속된 전쟁에서 많은 무공을 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말년에는 잔혹한 폭군이 되어 생을 마감했다고 함.

먼저 읽은 유발 하라리의 책들 처럼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현대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실감나게 묘사하는 능력이 역시 탁월해서 역사서가 아니라 마치 전쟁소설을 읽듯이 흥미 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고, 전쟁사를 통해 유럽 중세의 역사와 사회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 점은 좋았지만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대의 교훈을 얻었냐고 한다면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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