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관계에서는 무조건 상대에게 양보하는 이타적 관계에서부터 상호 윈윈 그리고 한쪽이 모든걸 가져가는 승자독식까지 다양한 협력과 경쟁의 관계들이 발생한다. 이런 관계를 두고 홉스와 같은 정치 철학자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인간 역사에서는 두개의 극단 사이에서 균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균형은 단순히 인간의 선의 때문이 아니라 협력이 적응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진화 생물학자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럼 이러한 협력은 근대 이후 어떻게 변화되어 왔을까?
저자는 유럽문화의 특수한 사건 즉 초기 종교개혁과 길드의 협동적 노동방식에서 협동적 문화가 촉발되었으며 이러한 문화는 직업적 외교관들이나 일상적 행위에 예절이 등장함으로써 가속화 되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협동적 문화가 현대사회에 와서 위기에 처했다는게 저자의 진단이다. 현대사회에서 협력이 무뎌진 이유로 다음 세가지를 꼽고 있다.

첫번째는 사회적 관계를 체득하는 아동 시기부터 아이들간의 상호 관계가 아닌 소비의존도에서 야기되는 불평등이 심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소셜네트웍은 우정을 상업화 하는데 아이들의 삶의 관계는 이제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연극적으로 소비되면서 아이들은 기존의 계급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두번째는 일터에서의 변화인데 2차세계대전 이후만 해도 미국의 공장에서 찾아볼 수 있던 획득된 권위와 상호 신뢰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의 협력은 금융이 대표적인 산업 모델로 부상함에 따라 찾아보기 어려워 졌는데, 이제 회사는 하나의 포트폴리오로써 단기적으로 팔리거나 추가하거나 개조할 수 있는 구성 부분의 집합체로 변모한 것이고 그 곳에서의 노동은 평생에 걸친 커리어가 아니라 단기적인 근무기간의 무대로 바뀌게 되었다. 거기에 각 부서간 단절을 의미하는 사일로 효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고 있으며, 기업이 복잡해지고 테크놀러지가 발전함으로써 최고 경영자가 테크니컬한 노동자들을 이해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회적 불안을 숨기기 위한 비 협동적 자아의 출현때문인데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타인과 상대하는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나르시즘 적인 자기 자신을 위한 공연을 하면서 자기만족적인 무관심 개인주의가 득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협력의 문화를 되살릴 것인가?
그중 하나는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신체적 협동의 문화를 가져오자는 것인데 동작은 관계를 활성화 시키고 숙련된 일꾼이 저항 (목수를 예로 들면 나무의 옹이)을 최소화 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더 많이 연결되고 참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부분은 잘 이해가 안됬다. 이런 신체적인 활동과 공유가 협력을 증진시킨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신체 활동의 특징이 협력을 고양시킨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은유로써 사용한 것인지 잘 이해는 안감
또 하나는 협력의 드라마를 만들자는 것인데 사람들과 만나는데에서 일상의 외교를 통해 대화적 대화를 실용화 하자는 것이다. 여기서는 카운셀링, 참여, 회의, 전문 외교관의 외교적 기술과 같은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첼리스트 출신의 박식한 사회학자로 글쓰기의 방식이 음악가, 공방등의 가까운 현실에서 중세의 철학자로 넘어가서 다시 현대의 정치 이론으로 넘어오는 방식과 같이 종횡으로 주제가 이동하는데 이게 재미있기도 한데 개념이 너무 방대해서 나로써는 중간중간 읽기 어렵고 개념을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ㅠ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