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23
페스는 오는 길도 힘들고 와서도 진을 빼서 여러모로 페스에서의 일정이 걱정됨. 빨리 후다닥 돌아보고 걍 숙소에서 쉬다가 낼
아침 일찍 쉐프샤우엔이나 갈까 싶기도 함. 일단 페스에도 호객꾼들이 워낙에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가능하면 아침 일찍 돌아다니자 싶어서 아침을 후다닥 먹고 일찍 숙소를 나섬.
페스는 예전에 매우 번화한 곳이어서 성곽 안에 건물들이 빼곡히 있는데 그런 건물들이 만들어낸 미로와 같은 골목이 유명한 곳.
세계에서 가장 큰 미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 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의지해온 maps.me와 갈릴레오는 골목 구석 구석까지는
아니지만 놀라운 정확도로 현재 위치와 중요 지점을 표시해준다. 두 앱을 의지해서 미로와 같은 페스의 골목 골목을 구경하고 다님.
차가 다니지 못하는 골목이다 보니 차를 대신하는 노새와 말, 상인들과 관광객들과 모로코 현지 주민들이 뒤엉켜 다니는 골목이 무척
활기차다. 수백년전 페스의 전성기때는 얼마나 이곳이 번화한 곳이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마라케시에서 감탄한 벤유스프 마다레사와도 비슷한 유적지도 보고 아프리칸 무슬림의 성지라는 모스크도 가보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도 골목을 따라 걷다보니 나타난다. 모스크에서는 과연 모로코에서는 자주 보기 힘든 사하라 이남 지역의 아프리칸들도 많이
보이는데, 눈만 마주쳤다 하면 번개같이 "아리가또, 곤니찌와, 니하오, 재팬, 차이나"를 외쳐대는 모로칸들과 달리 이방인들에
관심없이 전통복 차림으로 느긋하게 다니는게 왠지 품위 있어 보인다 ㅎㅎ
페스에서는 골목과 이슬람 유적지 이외에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죽을 염색하는 태너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거기를 보러 감. 태너리는
근처의 호객꾼 - 태너리까지 데려다 주고 돈을 받는 - 이 워낙에 악명이 높아서 뭐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지만 나를 내의지와
상관없이 태너리에 데려다 준 호객꾼은 아래 사람들에게 줘야 한다는 둥 해서 50drh을 달라고 하면서 계속 귀찮게 해서 실랑이를 좀
벌이다가 10drh 줘서 돌려 보냄. 그리고 근처 가죽 가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곳에서는 계속 가죽 제품 사라고 해서 이것도
좀 귀찮았다. 하여간 이런거 저런거 떠나서 태너리의 풍경은 놀랍긴 한데 아름답다고 하긴 어려운 풍경. 단지 더럽고 냄새나서가
아니라 고된 환경에서 생업을 하는 직업인들을 내가 뭐라고 카메라를 들이대나 싶기도 하고 - 우리 사무실에서 컴터로 일하는 사진을
외국 관광객이 와서 찍는다고 생각해보면 - 전통적인 방식으로 염색을 한다고 하지만 그 전통적인 방식이라는게 친환경 염색도 아니고
비둘기 똥과 소오줌과 재를 이용해서 만든다는데 환경과 작업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등을 생각하면 이런건 없어져야 하는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사진찍는데 죄책감도 들고 해서 사진 몇장 찍고 태너리를 나와 다시 한번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고 다님
'
이제 어디로 갈까?' 목적지 없이 발길 닫는데로 골목을 헤매면서 걸어다니는게 무척이나 즐겁다. 아침까지는 이것저것 우려스러웠는데
그래도 오길 잘한것 같다. 골목을 가다보니 전통 시장이 나오는데 마라케시에서 본 전통 공예품 시장이 아니라 고기와 야채등 정말로
모로칸들을 위한 시장. 묶어 놓은 닭이 꼬기오 울어대고,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붉은 빛 생고기들의 피냄새와 향긋한 민트의 냄새가
풍겨오고 다채로운 컬러으 온갖 식자재들이 어우러진 오감이 자극되는 시장의 풍경이 마음에 든다.
메디나를 나와서는 까르푸에 맥주를 사러 갔는데 이곳은 까르푸뿐 아니라 여러 낯익은 브랜드들이 눈에 띄는 현대식 쇼핑몰인데 지금까지
접한 모로코와는 완전 딴판이라 무슨 서유럽의 쇼핑몰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 ㅎㅎ 내일 쉐프샤우엔으로 갈 CTM 버스를 예약하고
강한 향신료의 음식을 먹고자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본 태국 음식점 Kai Tai를 찾아감. 꽤 먼거리를 갔는데 한참 후에 오픈한다고
해서 ㅠㅠ 그 근처에서 할 일도 없고 해서 근처 슈퍼 들러 쉐프샤우엔에서 먹을 맥주까지 사서 택시로 숙소까지 돌아옴
숙소로 돌아오니 빗방울이 조금 거세진다. 이곳에서는 비가 와도 뭐 하루종일 오거나 장대비가 쏟아지지는 않아서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 그냥 대부분 근처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다시 움직이는데 나도 빗소리 들으면서 숙소 루프탑에서 맥주
한잔 마시니 참 평화롭다. 예상처럼 곧 비가 그쳐서 메디나가 보이는 언덕을 올라가 보기로 함.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니 아무도
없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페즈의 모습이 그럴싸 하다. 셀카도 찍으며 놀다가 오늘은 반드시 스파이시한 음식을 먹고자 메디나 안을
걸어다닐때 봐둔 태국 식장을 어렵게 찾아내서 태국 음식을 먹음. 가격도 비싸고 - 모로코 여행중 먹은 가장 비싼 저녁 - 정통
태국 음식이라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살짝 매운 음식을 먹으니 힘이 나는구나 ㅎㅎ
모로코에는 참 고양이들이 많은데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는 못하지만 골목 골목 가게 구석 구석에 무심하게 앉아 있는 고양이들이 참
예쁘다. 원래 고양이를 좋아해서 한마리 입양하고 싶었는데 마침 남동생이 동생이 다니는 동물병원에 임시 보호중인 고양이가 있다고 카톡으로 알려줘서 급하게
키우기로 결정 ㅎ 어떤 고양이와 인연을 맺게 될지 참 궁금하다 ^^
미로 같은 페스의 골목길들
여기가 그 태너리 라는 곳. 또 가보고 싶진 않다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던데
뭔가 멋진 모로코 국기 ㅎㅎ
까르푸가 있던 건물은 현대식 쇼핑몰 ㅎ
언덕에서 바라본 페스 메디나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