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 다시 나고야로
예전에 "나는 걷는다 끝"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저자는 실크로드를 2년간 도보여행해서 유명해진 작가라던데 그때 못갔던 실크로드의 나머지 루트 - 리옹에서 이스탄불 - 를 여자친구와 함께 도보 여행한 여행기라고 해서 나도 여행가면 도보 여행은 못해도 왠만한 거리면 걸어다니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기대하며 읽었는데 기대에 못 미쳐서 매우 실망한 기억이 난다. 도보 여행하면서 느끼는 사색적인 이야기나 즐겁고 감동적인 경험담을 기대하고 도보여행의 뽐뿌를 받으려고 했는데 책의 2/3 정도가 힘들다, 차들 때문에 다칠 뻔 했다, 길을 잘 못 들었다, 몸이 아프다, 가지고 다니던 일인용 손수레가 고장났다...순 이런 이야기들이라니..
이번 여행은 주로 자연 속을 걷는 일정의 여행이라 여행의 성격에 맞는 책을 들고 가고 싶었는데 마침 우연히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혹시 위에서 본 책처럼 실망스럽진 않을까 했는데 리베카 솔닛이 쓴 "맨스플레인"도 재미있게 읽었고 해서 여행책으로 들고 왔는데 여행 내내 재미있게 읽음. 책의 원제 Wanderlust : History of walking 이라는 제목처럼 그리스의 소요학파부터 루소, 워즈워드등의 낭만주의와 근대에 이르기 까지 보행의 역사와 역사와 철학에서 보행은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현대와 미래 - 속도가 가장 중요한 미덕이 되어 버린 -에 보행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찰하는게 좋았다. 책 덕분에 산 속을 걸으면서 내딛는 발걸음 하나 하나, 마주치는 풍경들 하나 하나 음미하면서 다닐 수 있어서 더 좋았던 듯 하다.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보행과 여행은 우리가 하는 생각과 우리가 쓰는 언어에서 너무나 중요한 비유로 자리 잡은 탓에 이제는 그것이 비유라는 것을 깨닫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는데 실제로 우리가 걸을때는 비유가 비유이기를 그치고 우리 삶은 실제의 삶이 된다는 부분. 미로를 걸으며, 산을 오르며, 어떤 분명하고 바람직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할당된 시간을 글자 그대로의 길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모든 걷기와 여행을 통해 우리는 모종의 상징 공간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여행에서 마음에 많이 담으면서 다녔고 앞으로의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여행에서도 마음에 담아 두고 다녀야 겠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햇살에 어렴풋이 눈을 뜨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비는 그치고 하늘은 그렇게 보고 싶던 청명한 가을 하늘. 떠나는 날에 이런 하늘을 보여주는 구만 허허
어제 온천을 하러 가면서 온천 앞에 직접 키운 야채와 과일을 파는 곳이 있어서 온천 마치고 사오려다 보니 문을 닫아서 못샀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찍 문을 열었다. 맛있어 보이는 사과 두개 사서 버스를 타고 중간 지점인 다카야마로 이동. 히라유 온천지역을 벗어나 다카야마로 가는 도로 주변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1시간쯤 걸려 다카야마에 도착.
나고야로 가는 버스는 1시간 후에 있어서 기차를 알아보니 기차는 조금 빠르긴 한데 가격이 무펴 5,500엔! 역시 JR이구만. 그래서 그냥 버스로 가기로 하고 표를 끊음. 버스 요금은 2,980엔. 나고야에서 가미코지 갈때 나고야-마츠모토-신시마시마-가미코지 이렇게 가는게 복잡했는데 다카야마에서 가는게 버스도 많고 기후현쪽에 다른 곳과 연계도 잘 되어 있고 해서 좋은 것 같다. 다음에 올때 참고 해야지 ㅎㅎ
나고야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점심시간이 지나 너무 배가 고프다. 얼른 체크인 하자 마자 미리 찾아본 유명한 스시집을 찾아감. 아 근데 이럴 수가 본점은 공사중이다 ㅠㅠ 홈페이지 찾아가 보니 8월부터 공사중이라고 해서 다른 지점을 찾아 가서 맛있는 스시를 먹음. 본점에서는 다양한 세트메뉴가 있던것 같던데 내가 갔던 곳은 백화점 식품 매장에 입점해서 그런지 기대한 세트 메뉴는 없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점심 먹으러 온 백화점이 나고야에서 중심거리인듯 한데 오늘 마침 무슨 코스프레 행사인지 차들의 통행을 막고 만화와 게임 주인공들로 정성스레 차려입은 코스프레어들과 엄청 큰 카메라와 조명을 든 - 오타쿠 느낌 물씬 나던 - 촬영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사람들로 길이 북적북적하다. 이런건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게 될줄이야 ㅎㅎ 코스프레어나 촬영하는 사람이나 모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특이한게 코스프레어 촬영을 하려고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섰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포즈를 요청해서 한명씩 촬영을 하는데 이게 참 예쁘고 귀여운 사람들은 줄이 엄청 긴데 촬영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사람들도 꽤 되더라는...
점심을 먹고는 나고야 성에 가볼까 했는데 관람 시간을 보니 그때 가면 문을 닫을 것 같아 그냥 공원 산책하고 오아시스21에 가서 야경이나 보기로 함.
공원을 찾아가니 Social Tower Market 이라는 행사중인데 사케 행사를 하는지 사케도 팔고, 수공예품도 팔고 푸드트럭에서 맛있는 음식들도 잔뜩 판다. 나고야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이것 저것 구경하다가 크래프트 비어 파는 곳도 있길래 샘플러 사서 한잔 마시니 참 행복하다.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아쉽다
어느덧 해가 져서 오아시스 21과 옆에 있는 미술관 가서 나고야 야경도 구경하고 돈키호테 가서 레오 선물도 사고 저녁은 나고야 특산 요리중 하나인 된장으로 만든 우동인 니꼬니 우동도 먹고 나니 이제 배도 부르고 피곤하다. 심지어 오늘도 많이 걸어 다녔네 ㅋㅋ 그러고 보면 산에서는 보이는게 다 비슷해 보이지만 길이 미묘하게 다 다르고 걸으면서 보이는 풍경들도 순간 순간 다채롭고 몸도 열심히 사용해서 걸으면서 지루할 틈이 없는 것 같은데, 도시를 걷는건 정말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길은 특색 없이 어느 길이나 비슷하지만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걸음을 멈춰야 하는 자동차 중심의 수많은 보행 신호들, 오가며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상점과 음식점에서 관심을 끌고 돈을 쓰라고 부추키는 수많은 상업적 유혹들등 도시에서의 보행은 정보의 홍수로구나 싶으면서 그저 오늘 몸 쉬일 곳을 목표로 푸른 하늘과 형형 색색의 숲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숲을 걸었던 지난 며칠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야끼도리 집 앞에 사람들이 바글 바글 하길래 으..여기서 한잔 더 할까 싶은 생각이 굴뚝 같고 테바사키 생각도 많이 났는데 피곤해서 그냥 숙소로 와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 함..
전날 갔었던 야외 온천. 안에서는 사진을 못찍으니 포스터라도 ㅎㅎ 어제는 흐렸지만 맑은날 갔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겨울에 눈올때도 좋을 듯
떠나는 날 이런 푸른 하늘을 ㅎㅎ
일본의 극장은 신기하게 생겼다
코스프레 행사장 최고 인기 코스플레이어
포즈 연습 엄청 하는 듯 ㅋㅋ
스마트폰 보느라 나를 보시지는 않더라 ㅎ
이정도면 영화 관계자가 온게 아닌지
나고야의 야경을 끝으로 이번 여행도 마무리...
나고야 특선 된장으로 만든 오뎅과 우동. 우동 면발이 알덴테여서 신기했음
우리 레오 선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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