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 요코 캠핑장 - 초가다케


밤새 빗소리에 자다 깨다 하면서 아침을 맞음. 잠결에도 비 좀 그쳤으면 하는데 야속하게 빗소리는 그치지 않고 오히려 때로 우렁차게 더 커져서 에휴 슬프다 그러면서 다시 잠을 청하고는 했음.

날이 밝아 눈을 뜨니 6시. 비는 조금씩 잦아들고 일기 예보를 보니 오후에는 조금 그칠 것 같아 오늘은 어떻게 움직일까 고민을 시작함
비와서 텐트 걷기도 귀찮고 들고 다니기 무겁기도 한데 그냥 텐트는 놔두고 몸만 움직일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다시 가는데까지 가볼까 싶기도 했는데 어제 푹자서 그런지 왠지 더 갈 수 있을 듯한 자신감도 생기고, 캠핑장에서 캠핑하시던 다른 분들도 하나둘씩 부지런히 텐트 챙겨서 출발하길래 나도 텐트를 걷어 배낭에 넣고 길을 떠남. 아 그런데 조금 걷다 보니 처음의 호기는 금새 사라지고 배낭이 너무 무겁다 ㅠㅠ 결국 1시간 정도 더 가서 있는 다음번 캠핑장에서 계획을 다시 변경.

어차피 야리가다케까지 이 짐을 들고 올라가기는 불가능 할것 같으니 그냥 텐트를 이곳에 쳐놓고 오늘은 가까운 근방 산을 다녀 와서 자고 내일과 모레는 야리가다케와 위쪽의 산장에서 자기로 함. 그래서 캠핑 등록하는 곳에 가서 3일간 캠핑하고 싶다고 했더니 주인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눈치로 계획이 어떻게 되냐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근처 산에 다녀오고 내일과 모레는 텐트만 쳐놓고 산장에서 잘거라고 했더니 텐트만 치고 안자면 돈을 안내도 된다고 한다. 응?? 신기하네. 주인(?) 말로는 자기들이 관리를 못해줘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건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 아닌가? ㅎㅎ 어쨌건 그래서 하루치만 돈을 내고 1시간 만에 다시 텐트를 침 ㅋㅋ

캠핑장에서는 보통 산장도 같이 운영을 하는데 일반 캠핑/등산객에게는 보통 10시~2시 사이에 점심만 팔고 아침과 저녁은 산장에서 묵는 사람에게만 제공을 하는데 그것도 여기 와서 처음 암. 10시에 이른 점심겸 아침을 먹으면서 저녁은 몇시에 파냐고 물어보니 저녁은 안판다는 슬픈 대답이 ㅠㅠ 해먹어야 된다고 하면서 취사도구랑 해먹을거 안가져 왔냐고 불쌍하고 황당한 표정으로 물어보던데 참.. 오늘은 그냥 비상용으로 싸온 칼로리 발란스로 때워야 할듯 싶다. 

대충 배를 채우고 뒷산 올라가듯 초가다케라는 곳을 올라감. 야리가다케처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발 고도가 2,677m나 되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고봉보다도 높은 곳인데 캠핑장이 1,620m 였으니 1,000m 넘게 올라가야 하는 곳 ㄷㄷㄷ. 높은 산이다 보니 초반부터 경사가 가파른데 이게 끝까지 계속 이어진다. 처음에는 오르막이 힘들어서 체력이 예전만 못하구나 한탄하며 걷는데 그래도 한발 한발 내딛으며 보행의 리듬에 익숙해지니 조금은 나아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4시간 가까이 가파른 경사를 올라감.  오전에 조금씩 잦아들던 비는 산에 올라가니 그치고 구름도 옅어지고 군데 군데 파란 하늘도 보이기 시작한다. 이거 참. 정말 아이슬란드 여행과 비슷한 패턴이네. 시련을 먼저 겪은 후에 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건가 ㅎㅎ 

쉼 없이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 가까워지는데 정상으로 가는 능선에서 바라보는 북알프스의 풍경이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설악산, 지리산등 우리나라의 명산들과는 느낌이 다른 웅장함이랄까. 대니얼 캐너먼은 사람은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구분되고 그중에서 기억하는 자아가 항상 승리한다고 했는데 나도 이번 여행 처음에는 비 때문에 힘들고 혼자 걷는 산길이 외롭겠지만 나중에는 이런 감탄스러운 순간들만 기억에 남겠구나 싶다. 사실 그랬으면 좋겠고.

오르막길이 끝나니 초가다케 정상과 점심을 먹을 산장까지 가는 능선은 너무 아름다운데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었으면 좋겠다 싶다. 마침 같은 길을 가게 된 일본 아저씨와 말동무 하며 걷는데 그분은 텐트를 짊어지고 3일간 다니고 계신다고. 그래서 보니 텐트까지 있는데도 짐이 단촐하다! 나도 저렇게 짐을 컴팩트하게 꾸려서 왔어야 하는데.. 옷가지도 대폭 줄이고 책도 줄이고해서 말이지

점심을 먹을 산장에 다가가니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산장에서 위치를 알려주려 음악을 틀었나 했는데 다가가보니 어떤 젊은 여자분이 아코디언을 연주중이었다. 같이 걷던 아저씨와 박수 치면서 한참을 음악을 함께 들음. 너무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마음을 울리는 아코디언 소리가 어우러진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번 여행에서 아니 앞으로도 잊지 못할 순간이 될것 같다. 잊지 못할 음악을 들려주신 이름 모를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

산장에서 늦은 점심이자 오늘의 마지막 식사를 먹고 다시 캠핑장으로 복귀. 같이 걷던 아저씨는 여기서 잘거라고 느긋하게 풍경을 즐기시던데 부럽다 ㅎㅎ 오르던 길이 멀고 험해서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한참을 내려와 하루를 마무리. 캠핑장 여기저기서는 저녁을 해먹고들 계시네. 아이고 배고파 ㅠㅠ

오늘은 오른쪽 초가다케로. 왼쪽의 야리가다케는 내일 가보기로...


초가다케로 가는 초입


걷다 보니 비가 그치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높은 곳에서는 이미 단풍이 들기 시작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야리가다케 산의 모습



계속 걷고 싶었던 능선의 아름다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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