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 야리가다케 - 미나미 호타카다케
3,000미터가 넘는 곳이다 보니 고산 증세가 있는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힘들어서 그런가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머리도 아프고 춥기도 하고 옆자리 아저씨는 코를 골고 해서 자다깨다 하다보니 어느덧 사람들이 부스스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을 보니 4시반쯤 됬는데 일출을 보러 준비하는 모양. 좀 더 자다 일어날까 하다 그냥 일어나서 잔뜩 껴입고 일출을 보러 감.
어제 운해 아래로 떨어지는 일몰 만큼이나 멋진 일출을 기대하고 나와서 어스름 여명을 보고 있으니 한국분 4명이서 야리가다케 산 정상으로 향한다. 흠.. 저기는 좀 무서워서 갈까 말까 했는데 아무래도 정상에서 보면 전망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나도 용기내서 따라가봄. 어스름한 여명과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올라가는 길은 진짜 무섭긴하더라. 가파른 바위 절벽과 수직에 가까운 사다리를 기어서 올라가니 드디어 정상. 확실히 힘들게 올라온 만큼 정상에서 보이는 풍경이 너무 멋지다. 사방으로 펼쳐진 북알프스의 모습이 웅장하고, 멀리 보이는 후지산의 모습도 보기 좋다. 완벽한 일몰을 봤으면 좋았을텐데 구름이 좀 있어서 운해를 뚫고 올라오는 태양을 못본건 좀 아쉽다.
같이 올라온 한국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사진도 찍어드리고 정상에서 내려와서 아침 식사를 함. 아침을 먹고 나니 어느덧 많은 분들이 이미 길을 떠났다. 참 부지런들 하시다 ㅎㅎ 나도 정리하고 7시쯤 출발. 오늘은 호타카다케라는 북알프스 최고봉으로 가는 코스인데 길이 매우 매우 험난하다고 해서 시간과 체력을 봐서 중간 산장까지만 가기로 함.
헐...그런데 코스가 참...
산정상에서 다른 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 코스면 힘든 코스가 있더라도 좀 완만하고 걷는 재미가 있는 코스도 있을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내리막과 오르막이 진짜 엄청나다. 하도 급경사를 내려가길래 내가 하산길로 잘못 들어선줄 알 정도.. 첫번째 난코스를 지나고서는 설마 이거 보다 심한 코스는 안나오겠지 했는데 ㅋㅋ 기대를 무너뜨리는 풍경이 곧 나타난다. 저길 진짜 올라가나? 우회로가 있겠지? 싶어서 자세히 보면 도저히 사람이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가파른 절벽에 딱 붙어서 올라가는 앞선 등산객이 보인다. 어제는 힘들어도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오늘은 그럴 여유가 전혀 없이 한발 한발 내 딛을 곳을 확인하고 한손 한손 단단히 잡을 곳을 확인하고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면 내가 정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구나 싶은 생각이 밀려온다.
아니 이정도면 입산금지 시켜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길을 이런 짐을 들고 왔단 말인가 싶기도 하고 정말 어떤 순간은 가파른 절벽에 매달려 다음 발을 어디로 내딛어야 할지 몰라 아찔한 순간도 여러번 있었고 한번은 앞선 등산객이 절벽 위에서 소리 쳐서 보니 머리통 만한 낙석이 굴러떨어지는 순간도 있었는데 다행히 낙석이 떨어지는 곳과는 거리가 있어서 안전했지만 만약 앞서서 걷고 있었더라면 큰일 날 뻔한 순간도 있었다. 나중에는 하도 긴장하고 힘들어서인지 입이 바짝 바짝 타고 헛구역질이 다 나오더라 ㅠㅠ 걷는 일은 숨쉬기, 생각하기 처럼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이곳은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구나.
그래도 신기한게 한두걸음씩 천천히 갔는데도 돌아보면 걸은 거리가 꽤 된다. 내 인생도 돌아보면 긴 자취가 있겠지. - 물론 뭐 쓸만한건 하나도 없지만 - 앞으로 누군가와 함께 나중에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음 좋겠다는 망상을 잠깐 해봄.
아래도 안보고 위도 안보고 조심 조심 O표시 된 곳만 골라서 한발 한발 가다보니 그래도 드디어 산장이 나타난다. 산장까지 가는 길 자체도 험난하긴 했지만 결국은 산장에 도착. 그래도 드디어 해냈구나 ㅠㅠ 다음 산장까지는 2시간 정도 더 걸리는 모양인데 지도를 보니 그 길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앞서 도착해서 쉬시던 등산객들은 다음 산장까지 더 가시던데 나는 그냥 이곳에서 묵기로 함. 어제 묵었던 야리가다케 산장처럼 대규모는 아닌데 그러다보니 아기자기한데 더 마음에 든다. 심지어 잠자리도 2인 1실로 칸막이가 되어 있는데 옆자리가 비어서 그것도 좋음.
짐을 풀고 시원한 맥주도 벌컥벌컥 마시고 따듯한 커피도 한잔 마시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웃음이 나온다. ㅎㅎ 저기를 내가 지나왔구나 싶기도 하고 오늘 고생한게 그래도 조금은 잊혀진다. 저녁은 어쩌다보니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서 먹을 수 있었는데 어제처럼 떠오르는 달을 보며 마시는 생맥주가 참 맛나다. 이제 내일이면 하산. 캠핑장에 쳐둔 텐트는 잘 있겠지 마지막까지 사고 없이 잘 내려갈 수 있기를..
야리가다케 정상에서 바라본 북알프스의 풍경들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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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많이 껴서 일출은 이정도만..
정상에서 바라본 산장
이런 길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로..사실 이정도면 거의 대로 수준 ;;
신경쓸 겨를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잠깐씩 숨 고르며 옆을 보면 산이 깊고 웅장해서 멋지긴 하다.
이런 길을 걷고 걸어...
이런걸 보면 도대체 길이 있나? 싶은데 딱 떨어져 죽지 않을 만할 길 한개씩 있다.
지금 봐도 도대체 어떻게 저길 내려왔는지..
사다리나 쇠사슬이 아주 가끔 정말 아무것도 잡을게 없을 때 나타나는데 그럼 진짜 안심 됨 ㅋㅋ
자세히 보면 바위에 딱 붙어서 한분 앞서 가고 있음 ㅋ
드디어 도착! 저 멀리 야리가다케 정상이 보인다.
진짜 맛있었던 맥주 ㅠㅠ
지금 봐도 토나오는 다이키렛토 구간
아담하니 너무 좋았던 산장
이 맛에 등산 하는 거겠지
맛있는 저녁에 나마비루도 한잔
하몽도 있어서 사서 위스키랑 같이 먹음. 혹시 직접 만든거냐고 했더니 산거라고 ㅋㅋㅋ
산 속에서 예상치 못한 호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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