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국가 부도의 위기에 처하고, 스페인은 청년 실업률이 50%에 육박한다고도 하고,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같은 나라들이 PIIGS라고 묶여서 다같이 위기라고 하더니 작년에는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까지. 도대체 유럽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실 경제는 잘 모르기도 해서 그냥 뭐 경기가 안좋은가보다 생각했었는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냈던 조지프 스티글라츠가 마침 유로에 대한 책을 냈다고 해서 전에 “세계화와 그 불만”, “불평등의 대가”도 재미 있게 읽은 바가 있어서 사서 읽어봄
저자는 현재 유럽이 직면한 2008년 이후 장기 침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유로화라고 단정 짓는데서부터 책을 시작한다. 유로는 유럽의 통합 과정에서 밟아야 할 다음 과제였으며, 유로를 통해 유럽의 결속이 강화되고 경제적 통합의 강화가 경제 성장의 촉진으로 이어져 그 결과로 평화로운 유럽이 확립될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도입 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경제 이념과 정치적 연대의 결여로 인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고 이제는 실패할 운명에 처했다는 것이다.
유로는 여행과 유로존내 교역에서 주는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경기 조정을 위해 각국 중앙 은행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이자율 조정과 환율 조정 권한을 제한하고, 낮은 부채와 재정적자에 집착하도록 하여 불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경제적 약자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국가들에 대한 트로이카 (EU, 유럽 중앙은행, IMF)의 대응도 강하게 비판하는데 위기 국가들의 회복을 저해하는 것은 트로이카의 주장대로 위기 국가의 경직된 노동시장, 부패, 탈세와 게으른 낭비의 탓이 아니라 유로존의 구조적인 문제이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여러가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카가 지원을 빌미로 내세운 긴축 정책으로 인해 위기 국가의 경상수지는 다소 호전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저소득층 국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고급 인력들의 유출이 심화되고 위기국가로 흘러간 구제 금융은 경제 구조를 개선하고 미래 성장을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위기 국가에 돈을 빌려준 채권국가의 (주로 독일) 은행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유럽 공동체의 분열과 민주주의 결손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유로 도입을 주도한 정치인들의 경제적인 식견 부족과 함께 신자유주의에서 찾고 있는데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하여 인플레이션만 안정되게 유지하면 시장이 모든 이들을 위해 성장과 번영을 보증해 줄것이라는 믿음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이러한 시장 만능주의라는 특정한 이념이 유로존 건설의 바탕이 되었으며 이 바탕위에 경제적 의사 결정권은 개별 국가의 국민이나 노동자가 아닌 테크노크라트라고 불리는 금융엘리트에게 이전되어 금융업자와 채권 소유자들의 이익과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제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전히 계몽주의의 발상지이자 피의 20세기를 넘어선 전지구적 공동 평화를 향하는 유럽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믿으며 이를 위해서는 유로는 목적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다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 전면적인 개혁, 원만한 이혼, 유연한 유로를 제시한다.
유로존과 유로화의 문제는 각 국가들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복잡한 정치, 경제, 외교적 문제일테지만 그 근본에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금융권력이 기저에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고, 유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유럽에 대한 뉴스를 접할때 이 책 덕분에 조금은 다르게 뉴스를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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