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우리나라에 여혐/남혐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계기는 김자연 성우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자들은 왕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정치적으로 완벽히 올바른 이 문구가 적힌 티셔츠 한장때문에 한창 시끄러웠고, 지지 논평을 한 정의당과 시사인은 탈당과 절독이 이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도 정의당 당원이었는데 친한 후배가 이 사건때문에 정의당도 탈당하고 술먹으면서 말싸움도 심하게 했었던것 같다. 그 후배 말로는 그 티셔츠를 만든 메갈리아라는 사이트가 일베랑 똑같은 곳 아니냐 하는거였는데 그당시 나는 소극적으로 정의당과 김자연 성우를 옹호하기는 했지만 사실 혐오를 혐오로 맞받아 치는게 과연 최선일까? 아무리 미러링이라고 해도 인종차별적이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은 괜찮을 걸까 하는 의문들이 많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이후에 정의당을 탈당했는데 이 문제와는 무관하게 서울시당 위원장인가 뽑을때 하루에도 몇차례씩 오는 문자와 카톡, 전화가 너무 귀찮아서 탈당했다.) 그 이후로 페미니즘, 혐오 관련한 책들을 기회 되면 읽어보던 차에 트위터에서 팔로우도 하고 있던 홍성수 교수의 책이 나왔다고 해서 위시리스트에 담아 두었다가 마침 이책을 사야 알라딘 굿즈를 받을수가 있어서 ㅋ 겸사 겸사 구매해서 읽어봄
이 책은 전반적으로 혐오표현이란 무엇이며 왜 규제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규제가 가능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일단 혐오 표현이란 무조건 특정한 개인, 집단을 폄하한다고 해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발화자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서 혐오 발언을 했는지, 사회 문화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현실적인 차별과 위험이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며 그래서 일반적으로 남혐, (백인 중심 사회에서) 백인 혐오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혐오 표현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 표현의 자유인데 그렇다면 혐오 표현 규제와 표현의 자유는 양립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타인과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발언은 표현의 자유로부터 보호받을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는 혐오표연이 조금씩 용인되고 사회에 만연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증오 범죄로 이어질 수 있으며, 발언 자체가 소수자들의 정신과 신체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가할 뿐 아니라 공동체에서 반드시 필요한 포용의 공공선과 정의의 기초에 관한 상호 확신의 공공선을 파괴하기 때문에 반드시 규제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규제할까?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혐오 표현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규제하는데 혐오 표현 자체를 형사 처벌하는 나라도 있고 단순한 혐오를 넘어 행동을 선동하는 발언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나라도 있고, 미국 처럼 강력한 표현의 자유를 위해 표현 자체로는 처벌하지 않는 나라도 있는데 강력한 법적 처벌의 범위가 너무 넓어지면 악용될 소지가 크고, 불법이 아닌 순간 역설적으로 발언이 허용될 수도 있는 등의 단점이 있으니 형법에 입각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 차별 금지법의 도입과 함께 공공 시민 사회에서의 혐오 표현에 맞서는 더 많은 표현들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책을 읽고 나면 혐오 발언에 대해 그동안 불편하고 궁금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많이 정리가 되어 좋았고, 앞으로 어떤게 혐오 발언이고 왜 하면 안되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준이 생긴것 같은데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런 혐오가 만연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책을 통해 더 읽어 보고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세계적인 인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경우에도 최근 난민들의 유입으로 혐오문제가 사회문제화 되는 상황에서 혐오의 만연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뿌리 깊은 좌파 혐오(빨갱이)와 호남 차별,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여혐, 수구 보수 개독 기독교가 중심이 된 성 소수자 혐오, 백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종과 종교에 대한 혐오 (조선족, 동남아 이주민, 무슬림, 흑인...), 장애인 혐오등이 존재하는데 거기에 인권 교육은 미흡하고, 시민 연대의 경험은 거의 없고 이러한 혐오와 분열을 없애는데 앞장서야할 정치인들은 오히려 이러한 혐오를 부추키고 있는데,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증폭되는 인터넷 공간은 너무 많으니 참 갈길이 멀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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