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9

가사가다케 산장(笠ケ岳山荘) → 가사가다케(笠ケ岳) → 쿠리야노가시라(クリヤノ頭) → 나카오다카하라구치(中尾高原口) → 히라유온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산행.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는 분중에 오모테긴자 코스를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모든 코스중에 절대로!! 쿠리야노계곡 코스로는 가지 마시길!!

전날 오랜만에 비바람 소리도 안들리고 푹신한 이불위에서 자서 그런가 오히려 잠이 쉽게 안와서 한참 누워 있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오늘은 텐트 걷을 필요도 없고 해서 여유있게 준비하고 6시에 출발하려고 5시쯤 일어나니 그때만해도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거세다. 어제 캠핑 안한게 정말 다행이구나 생각하며 일기예보를 보니 6시정도에는 비가 그치는 모양

짐을 싸고 기다려보니 비가 다행히 그쳐 하산을 시작. 그 전날 다 젖었던 옷은 다행히도 산장에 드라이룸이 있어서 뽀송뽀송하게 말랐는데 전날 젖은 신발은 여전히 축축하다 ㅠㅠ 그래 오전에만 신고 내려가서 슬리퍼로 갈아 신자 생각하고 오늘은 하의 우의도 입고 젖은 신발 끈을 동여매고 출발

어제는 비도 오고 코스도 힘들었지만 오늘은 비옷도 챙기고 하산길이니 룰루랄라 내려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건만 이 코스가 내 등산 인생 최악의 코스가 될줄이야….

일단 시작하자마자 가사가다케 정상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너덜바위 오르막이 힘들게 하더니 그 뒤로는 전날 등산때 괴롭혔던 등산로 양쪽의 관목들이 다시 한번 너무 힘들게 한다. 분명히 오늘 버스를 타러 내려가야 하건만 어째서인지 계속 오르막길 내리막이 반복되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였으면 그냥 아 힘들었다 그러고 말텐데 얼마 안 있어 정말 녹색 지옥도가 펼쳐진다.

지금까지 걸었던 북알프의 다른 길과 달리 등산로가 30cm도 안될정도로 좁은데 문제는 등산로 양쪽으로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등산로를 찾을 수가 없다! 유일한 단서는 등산로에는 수풀이 없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살짝 들어간 부분이 보여서 그 길로 가야하는데 그렇게 가다보면 몇차례고 길이 끊기고 절벽이 나와서 다시 한번 수풀을 헤치고 온길을 되돌아가서 진짜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몇번 계속되니 멘탈이 흔들릴 지경이 된다. 거기다 바닥이 안보이니 빙판같은 돌이나 풀줄기를 밟아 계속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구르고 ㅠㅠ 그러다 한번은 경사지에서 풀 줄기를 밟아 아래쪽으로 쭈욱 미끄러졌는데 그냥 넘어지고 만게 아니라 한 두어바퀴(?) 정도 굴러서 무성한 풀숲 중간에 떨어진 것. 무엇보다 다행인건 안경이 벗겨지지 않고 살짝 걸쳐진채로 남아 있어서 안경을 다시 쓰고 앞에 떨어진 스틱도 줍고 일단 마음을 다스리는데 아 정말 이러다 조난 당하는구나 싶다. 여기서 조난 당하면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데 행방불명 되는건가 싶은 생각까지 하다가 심호흡 크게 몇번 하고 미끄러운 풀뿌리를 잡고 겨우 겨우 몇미터를 기어서 올라왔는데 지금 생각해도 혹시라도 더 급경사지였으면, 팔에 힘이 없어서 못 올라왔으면 진짜 큰일 날뻔 했다. 그러고도 하산 지점까지 넘어지고 길을 찾아 헤매면서 내려오는데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먹고 강행군인 몸도 몸이지만 멘탈이 나갈것 같다. 이때 정말 maps.me가 없었으면 백프로 조난당했을거라고 확신한다. 길이 헷갈릴때마다 maps.me의 트레일 코스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도대체 이런 코스를 누가 가며 우리나라처럼 등산로마다 데크며 야자매트며 깔아두지는 못하더라도 이 길로 가라고 표지판이나 하다 못해 리본이라도 매어 두어야 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양옆에 풀을 자르기도 하나 본데 어쨌건 일본의 경험기 찾아서 읽어보니 다들 한목소리로 위험한 코스고 비인기코스라고 한다 ㅠㅠ

중간에는 한술 더 떠서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비가 안오면 그냥 바위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전날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아 급류가 형성되어 있다. 이거 참 급류에 희말려 떠내려가면 진짜 죽을 수도 있구나 싶었는데 겨우 겨우 위험을 무릅쓰고 계곡도 건너고 길 끝까지 이어진 수풀을 헤치고 겨우겨우 하산에 성공 ㅠㅠ 등산로 끝날 무렵에 보이는 아스팔트 길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ㅠㅠ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새벽 6시부터 장장 8시간을 뭐 먹은 것도 없이 내려온 것이다. 사서 고생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무슨 이런 고생을 하나 싶다 ㅠㅠ

나는 비가 와서 별 경치도 못본 가사가다케가 일본 100대 명산중의 하나라던데 종주중에 조금더 산에 있고 싶어 가사가다케를 간다면 산장에서 캠핑 혹은 숙박 후 아침에 산에 가서 일출 보고 누메다 다케까지 왔던 길로 돌아와서 신호타카 방면으로 내려 오는 코스가 훨씬 좋을 것 같다.

이제는 좋고도 힘들었던 산을 떠나 속세(?)로 떠날 시간. 7년전에 가서 좋았었던 히라유 온센에서 산행의 피로를 풀기로 함. 버스 정류장에 가서 젖은 신발도 벗고 옷도 좀 갈아입고 30분쯤 기다리니 히라유 온센행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에 몸을 싣고 히라유 온센에 도착하니 7년전 시간이 멈춘듯한 작은 온천 마을이 보인다. 지난번에 묵었던 곳을 갈까 하다가 이번에는 조금 비싼 곳에 묵었는데 지난번에는 온천 입욕권을 줘서 숙소에서 좀 떨어진 대형 온천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었는데 이곳은 프라이빗 탕이라고 해서 혹시 고급 료칸처럼 숙소마다 온천이 있나 했더니 그건 아니고 ㅋ 2개의 실내 온천, 2개의 야외 온천이 있는데 먼저 들어간 사람이 들어가서 문 잠그고 독점하여 쓸수 있는 시스템 ㅎㅎ 룸이 15개는 되는거 같은데 사람 많을땐 기다리다 불만 가지는 손님은 없으려나? ㅎㅎ 다행히 나 갔을땐 야외탕 말고는 비어 있어서 무려 5일만에 머리 감고 샤워하고 면도까지 하고 따듯한 탕에 몸을 담그니 지난 4일간이 떠오르기도 하고 오늘 산에서의 그 힘들었던 시간들이 생각나면서 조금 섬찟해지기도 한다.

숙소 코인 세탁기에 빨래 돌리고 기다렸다가 건조기에 넣어두고 오늘의 첫끼를 먹으러 나감. 음식점도 지난 7년동안 바뀐게 없는거 같은데 한곳은 마침 오늘 휴일이고 해서 조금 걸어서 히다 소고기로 저녁을 먹고 2차로 7년전에도 갔었던 라멘집 가서 라멘 대신 테바사키에 맥주를 마시고 숙소 온천 한번 더 하고 하루를 마무리

비가 좀 잦아들어서 하산 시작인데 시작하자마자 너덜바위를 한참 오름
100대 명산중의 하나라는데 날씨 때문에 전혀 감흥이 없었던 가사가다케
지옥 같았던 등산로 1
지옥 같았던 등산로 2
지금 봐도 끔찍하네 ㅠㅠ
이런 계곡도 건너야 하는데 비 좀더 왔으면 꼼짝없이 같혀 있었을듯
이런 계곡도 건너고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한국 와서 일본 웹 검색해보니 내가 내려온 코스 다녀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랑 비슷한 경험을 했다 ㅠㅠ
7.8km 내려오는데 8시간 걸렸음 ㄷㄷㄷ
여전히 조용한 히라유 온센 마을
아담한 파출소. 앞에 있는 캐릭터가 귀엽다 ㅎ
저녁은 히다 소고기
히다 지역 지비루로 무사 귀환을 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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