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환상의 빛”에 이어 만든 두번째 장편 영화로 1998년 작품
영화가 시작하면 오래된 학교처럼 보이는 곳에서 직원들이 나와서 하루 일과를 준비하고 곧 이어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곧 이곳이 어떤 곳인지 밝혀지는데 이곳은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가기 전에 일주일간 머무는 곳으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하면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 주고, 망자는 영상을 보면서 그 추억만 가지고 저승으로 떠날수 있다. 망자들은 직원들과 인터뷰 하면서 본인들이 가져갈 단 하나의 추억을 이야기하는데 2차세계대전 시기 기아와 피로로 죽기 직전 미군의 포로로 잡혀 미군으로부터 담배와 밥을 얻어 먹은 순간을 이야기하는 할아버지, 파일럿 학교에서 비행 훈련중 겪었던 창공을 날았던 추억을 간직한 젊은이, 어릴적 전철을 타고 다니며 차창 밖으로 부터 나오는 바람을 맞던 순간을 이야기하는 중년의 아저씨, 디즈니랜드에 놀러간 기억을 이야기하는 여중생 (나중에 보다 개인적인 추억으로 바꾼다), 출산의 고통을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하는 젊은 여성, 그리고 어릴적 오빠 앞에서 춤을 추고 치킨라이스를 먹던 순간을 떠올리는 할머니 등 대부분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 하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행복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어서 때로 누군가는 삶을 반추하는 것 자체가 괴롭다고 추억을 떠올리기를 거부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은 특별한게 없어서 추억을 정하지 못하고, 어떤 21살의 젊은이는 추억을 정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거라고 주장하며 추억을 떠올리기를 거부한다.

직원들은 추억을 떠올린 사람들을 위해 영상을 제작하는데 영상은 요즘 영화처럼 CG를 이용해서 만드는게 아니라 예전 영화들처럼 소품을 직접 만들어서 세트를 꾸미고 망자들이 와서 본인들의 기억을 되살려 감독(!)과 소품담당(!)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데 이부분이 참 정감있고 좋았다. 특히 오빠 앞에서 춤을 추던 어린 시절을 재연하기 위해 세트장에 와서 대역에게 춤을 가르쳐 주며 비록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행복한 감정만은 그대로 남아 행복해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이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중의 하나. 감독은 이 장면들을 통해 영화라는 매체가 사람들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매체임을, 그리고 사람들의 삶은 누구나 본인들이 주인공인 영화와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일생을 반추하는게 괴로워 추억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나머지 인생을 잊기 위해 일생의 어느 순간을 선택하고, 평범하게 살아와 선택을 못한 할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남다른 삶을 살고 싶었으나 무난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이 평범하고 특별한 순간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평범한 순간중 하루를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추억을 선택하지 않은 젊은이는 끝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림보에 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승으로 가져갈 추억을 선택하지 못한 또는 안한 사람들. 남자 주인공 또한 그런 사람들중 한명인데 특별한 순간을 발견하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도와주며 본인의 약혼녀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녀가 저승으로 가져간 추억이 본인이었음을 깨닫고 그 깨달음의 순간 -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의 순간이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 과 동료들과의 순간을 추억으로 가지고 그 자신도 저승으로 떠나게 되는데 이 과정의 감정적 울림이 매우 크다.

매일 매일 물 흐르듯 연속적으로 흘러가는 우리의 삶에서 어느 한순간 보석처럼 빛나는, 연속성이 단절되는 순간을 우리는 추억으로 간직하는거라면 어떤 추억을 선택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삶을 이야기해주는게 아닐까?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 누구나가 떠올릴 텐데 과연 내 인생에서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단 하나의 추억은 뭐가 있을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먼 훗날 그렇게 기억될 추억을 앞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문득 키즈리턴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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