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상찬하는 많은 글들과 책이 있지만 전에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전적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낭만주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속삭이고 소비 지상주의는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가능한한 많은 재화를 소비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낭만주의와 소비 지상주의가 꼭 들어맞아 탄생한것이 현대 여행산업이 기반으로 하는 "경험의 시장"이라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여행 산업을 폄하하거나 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쓴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개인적인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래밍 된 것의 사례로 여행 산업을 들고 있는데 종종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나로써는 뜨끔한 구절이 아닐 수 없었다. ㅎㅎ

어떤 이유에서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중남미에 대한 꿈이 있지 않을까. 나도 항상 언젠가 가봐야지 마음 먹었다가도 먼 거리와 악명높은 치안문제가 걱정되서 매번 포기했었는데 이번에는 큰 맘 먹고 중남미의 첫 관문인 멕시코를 다녀오기로 함. 

멕시코 하면 멕시코 음식이나 먹을 줄 알고 마야, 아즈텍 문명의 발상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칼로와 같은 유명 화가 정도를 대충 알고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여행 전에 멕시코에 다녀온 선배가 빌려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칼로 평전과 멕시코 혁명사 2권, 세상에서 가장 재미 있는 세계사, 론리플래닛 등등을 읽어보니 정말 슬프고 파란 만장한 역사를 가진 나라여서 놀랐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강국으로부터 식민지화 되었고-우리 나라를 포함해서- 이런 나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식민 본국의 수탈, 수 많은 희생을 가져온 독립 운동, 그리고 독립 이후에도 근대적인 민주 국가가 되기 위한 과정은 혼란과 유혈로 점철되어 있지만 멕시코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가 아닐까. 
찬란한 고대 문명과 마야, 아즈텍 문명의 발상지였으나 스페인인 에르난 코르테스의 침략으로 융성했던 문명이 단 2년만에 몰락하고 수백년간 식민지배를 당하면서 국가의 부는 수탈 당하고 멕시코 원주민들은 구대륙에서 전파된 천연두라는 새로운 질병으로 원주민들이 인종 청소에 가까운 수준으로 급감한 나라. 스페인 본토 사정과 맞물려 어렵사리 독립을 이루었으나 이후 지속된 정치적 혼란과 독재가 이어지고 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노동자 농민 지식인들의 30년에 걸친 혁명전쟁으로 전 국토가 피로 물들었으나 (멕시코 인구 8명중 1명이 혁명 전쟁중에 사망했다고...;;;) 끝내 독재를 물리치고 노동자에게 자유를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주었던 나라. 하지만 멕시코의 근대사는 해피엔딩이 아닌게 혁명을 이끌고 승리한 당은 이후 80년간 다시 독재를 하게 되고 부패, 정경유착, 언론탄압, 신자유주의 도입등으로 극심한 빈부격차와 함께 빈곤국으로 전락한 나라.
2주간의 짧은 멕시코 여행에서 나는 복잡 다단한 멕시코의 역사와 현재를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모쪼록 많은 것들을 느끼고 가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천 공항을 떠나 12시간의 지루한 비행을 거쳐 예정시간보다 30분 정도 먼저 환승을 하기 위한 댈러스 공항에 도착. 미국의 환승 시스템이 워낙 악명이 높아서 좀 걱정하긴 했지만 세상에 이정도일줄이야! ESTA비자 확인증 출력, 입국심사, 세관 통과, 출국심사 및 보안 검색 이렇게 줄을 계속 서는데 창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보안 검색은 또 얼마나 철저한지 정말 공항 이용자 모두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생각하는 듯...
거의 1시간 반쯤 걸려 환승 절차를 통과하고 곧바로 멕시코시티행 비행기에 탑승. 멕시코에서도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린다고 들었는데 도착하니 입국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해서 곧바로 공항으로 나와서 택시로 숙소까지 이동 후 숙소 주인이 사준 맥주 같이 마시며 여행의 첫날을 마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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